팬은 10만 명이었지만,
10만 원짜리는 팔리지 않았습니다
2016년 다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트래픽은 충분했고 제품도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결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문제가 아니었는지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다노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팬을 모으고 있었고, 앱 지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앱을 여는 사람이 10만 명에 가까웠습니다. 다이어트 정보를 정확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회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콘텐츠는 잘 읽혔습니다.
그런데 마이다노가 팔리지 않았습니다.
마이다노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유료 PT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운동은 영상 숙제로 제공하고, 식단과 운동 가이드, 마인드셋까지 실제 코치가 채팅으로 관리해주는 모델이었습니다. 가격은 10만 원대. 앱 안에서 바로 결제되는 구조였고, 앱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방문자 중에서 결제로 넘어가는 비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습니다.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어도, 더 잘 정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몇 달 동안 지지부진했습니다.
진단: 무엇이 문제가 아니었는가
품질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 증거가 재구매율이었습니다. 한 번 결제한 사람은 다음에도 결제했습니다. 써본 사람은 다시 샀고, 그 '한 번'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서비스가 아니라 서비스에 도달하기 전 구간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첫 결제가 일어나지 않는가. 답은 우리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온라인 PT'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거의 최초였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카테고리에서 파는 일과, 없는 카테고리를 파는 일은 다른 종류의 싸움입니다. 앞의 경우에 필요한 건 설득입니다. 왜 우리가 더 나은지 설명하면 됩니다. 뒤의 경우에 필요한 건 상상입니다. 이게 대체 뭔지, 내 생활에서 어떤 모습일지를 떠올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상은 설명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설명을 아주 잘하고 있었고, 그게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문제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더 잘 설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한 번이라도 해보게 만들 것인가.
다른 시장에서 가져온 것
답은 엉뚱한 데서 나왔습니다. 영어 학습 시장을 들여다보다가였습니다.
사람들이 특정 영어 공부법을 따르는 이유를 보니, 방법론 자체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으로 실제로 결과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가 먼저였습니다. 서울대에 합격한 누군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고, 그다음에 방법이 따라왔습니다.
순서가 우리와 반대였습니다. 우리는 방법을 먼저 내놓고 있었습니다.
가설 수립
정리하면 세 문장이었습니다.
- 신뢰를 먼저 만들고 그 신뢰 안에서 한 번이라도 체험하게 하자.
- 팬은 이미 있는데 그 팬이 향할 실체가 없다. 실체를 만들자.
- 대표를 아이콘으로 세우자.
세 번째가 가장 무거웠습니다. 회사의 얼굴을 한 사람에게 거는 일이고, 그 사람 본인에게는 사생활을 상당 부분 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략으로는 맞는데, 사람에게 부탁하기에는 미안한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지수 대표에게 한 말은 이랬습니다.
"지수님, 지수님이 전면에 나서야 해요. 불편한 건 알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지수님이 얼굴을 드러내고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야 해요. 사람들이 지수님을 롤모델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다노언니'가 되어 보는 거 어떠세요?"
'다노언니'라는 이름은 그 대화에서 나왔습니다. 기획안에 적혀 있던 게 아니라, 설득하는 도중에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하.. 진짜 자신 없는데... 그래도 회사를 위해서라면 한번 해볼게요."
흔쾌한 승낙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일
이지수 대표는 20kg 넘게 감량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 경험은 콘텐츠 뒤에 있었습니다. 근거로만 쓰이고 있었지, 드러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앞으로 꺼냈습니다. 감량 히스토리, 하루의 생활 습관, 건강에 대해 가진 생각을 콘텐츠의 중심에 뒀습니다.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한 사람이 실제로 살아낸 방식을 통해 방법을 설명했고, 그 흐름 끝에 마이다노를 뒀습니다.
무엇이 움직였는가
순서대로 세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같은 말이어도 그 말을 살아낸 사람이 하면 다르게 들립니다.
다음으로 시도의 문턱이 낮아졌습니다. 한 번 해볼까, 라는 마음까지 가는 거리가 짧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리뷰가 쌓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가능한 한 많은 후기와 사례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게 다음 사람의 문턱을 다시 낮췄습니다.
여기서부터 순환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월 이용자 천 명이 되지 않던 마이다노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삼천 명, 사천 명, 오천 명으로 올라갔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함께 커졌고, 이지수 대표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그 단어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이 전략의 대가
여기까지만 쓰면 절반만 말한 것이 됩니다.
사람을 앞에 세우는 전략에는 값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치면 회사가 멈춥니다. 개인의 일이 회사의 일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브랜드를 그 사람에게서 떼어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이 비용을 이후 몇 년에 걸쳐 실제로 치렀습니다.
"진짜 자신 없는데"라는 그날의 대답은 엄살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예측이었습니다.
그래도 2016년의 그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옳은 결정과 공짜인 결정은 다릅니다. 이 전략을 검토하는 분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그 값을 먼저 계산해보시길 권합니다.
남는 질문
1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상황을 자주 봅니다. 트래픽은 있는데 전환이 없고, 콘텐츠를 더 만들면 풀릴 것 같아서 더 만듭니다.
그럴 때 저희가 먼저 확인하는 것은 순서입니다. 써본 사람은 다시 사는가. 그렇다면 제품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다음, 우리는 고객에게 잘 도달하고 있는가. 도달도 되고 있다면, 그럼에도 구매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까지 오면 대개 남는 것은 신뢰입니다.
그 신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노는 사람으로 풀었지만, 그건 그때 우리가 가진 것이 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사는 쌓인 후기로, 어떤 회사는 일단 한 번 써보게 만드는 방법 자체로 풉니다.
결국 여러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검증해볼 뿐입니다.
마케터는 정말 부지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